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록이 쏟아지던 시기
지금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중반 국내 음반시장은 확실히 호황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신승훈, 김건모 등등 음반만 냈다면 100만장은 기본으로 넘기는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이런 음반 시장의 호황 속에서 수요가 급증한 일부 특정 장르들도 있었다. 재즈가 그랬고 클래식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동안 구하기도 힘들었던 외국의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사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프로그레시브록, 아트록에 경도됐다고 부정 못 하겠다. 특정인 성시완과 전영혁의 영향이 아마도 가장 크지 않았을까? 이들이 소개한 음반들이 입소문을 타고 속속 발매됐고 그 시발점은 뉴트롤스(New Trolls) 앨범부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했다. 영미권의 메인스트림 음악들도 아니고 6-70년대 발매됐던 유럽의 희귀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이나 아트록 음반들, 정말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가수와 음악들이 레어 아이템 희귀앨범, 명반이란 이름표를 달고 그 몇 년 사이에 쏟아져 들어왔었고 라이센스로 발매까지 이뤄졌다. 이탈리안 깐따또레 가수들의 음악부터 브리티쉬 포크 음악들과 다양한 국가의 아트록 음반이었다. 분명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시장에 음반들이 발매됐겠지만 이 시기 모든 음반이 다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정말 좋아했던 음반들도 다수 있었지만, 너무 난해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쓰레기 같은 앨범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트리움비라트(Triumvirat)와의 첫 만남
처음 이들의 음반을 구입한 건 90년대 초반 EMI에서 발매한 라이센스 앨범 두 장이었다. 계란 깨고 나온 쥐, 전구 속에 있는 쥐 이 두 장 LP였다. 쟈켓이 주는 이미지가 컸다. 쥐새끼들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그 음악이 너무 궁금했다. 잘난 척하고 싶은 중학생이 이 음반을 들었으니 꼴깝 떨기 딱 좋은 앨범이었다. 음반 해설지를 줄줄 외우고 다니고 팝송이나 가요를 듣는 친구들을 속으로 개무시는 일상이었다. 때마침 세계사 시간에 삼두정치를 배우고 있었고 그 삼두정치를 밴드명으로 하는 LP도 구입 했으니 잘난 척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돌이켜 보건데, 나란 인간자체가 잘난 척을 즐겼다. 그래서 이 앨범을 볼 때마다 부끄럼을 느낀다.
트리움비라트 이름나오면 해설지 내용을 달달 외워서, 삼두정치의 트리움비랏에서 유래했다는 말부터 “니들은 이런 음악 알어??” “이거 죽여줘?? 세상에 이런 음악이 없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야” 3종 세트를 날렸다. 꼴깝도 이런 꼴깝이라니…약도 없다는 중2병이 무서운 이유다.
트리움비라트(Triumvirat) 어떤 밴드?
트리움비라트는 1969년 독일 쾰른에서 결성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다. 당시 영국밴드 에머슨, 레이크 & 팔머 (Emerson, Lake & Palmer)의 음악 스타일에 크게 영향 받았고 팀 구성도 비슷했다. 비평가중에는 대놓고 ELP의 카피밴드, 복제품이라 부르는 이도 있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초기 음악에서는 비슷했지만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1975년 세 번째 앨범인 ‘Spartacus’는 이들의 최고작이란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 앨범은 기원전 유명한 로마 노예이자 검투사의 이야기를 컨셉트 형식으로 뽑아냈고 생각보다 좋은 결과물을 발표했고, 빌보드앨범차트에서 27위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 기세를 몰아 미국투어까지 나섰고 슈퍼트램프(Supertramp)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올랐는데 슈퍼트램프를 능가하는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며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멤버들의 탈퇴와 레코드 회사의 압력으로 밴드는 원래 색을 잃어갔다. 거기다 전 멤버와의 밴드명을 두고 법적 다툼까지 발생해서 뉴 트리움비라트(New Truimvirat) 새 이름으로 앨범을 발매하기 이른다. 밴드는 1980년 마지막 앨범을 발표하고 해체한다.
트리움비라트(Triumvirat) 최애앨범 [À La Carte]
학창시절에 감수성 텐션 터질 때 들었던 음악은 평생을 간다. 한동안 시완레코드 음반들,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의 멘트 한마디 해설지 한 구절이 성경 이상이었을 때다. 어찌됐건 시간이 지나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쥐새끼 달걀도 전구 앨범도 아니다. <For You>가 수록된 [À La Carte]앨범이다. 참고로 ‘à la carte’ 이 말은 일품요리를 뜻한다.
트리움비라트의 초기작과 달리 이 앨범에서는 리더인 위르겐 프리츠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게 된다. 그동안 함께 했던 멤버들의 탈퇴와 법정다툼 거기에 더 많은 판매고를 원했던 레코드 회사의 압력으로 이 앨범은 기존의 트리움비라트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밴드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프로그레시브록 앨범이 아닌 대중적인 록 밴드로 전환됐다. 이 앨범에서 멤버들은 레코드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탈퇴한 멤버들을 대체한 임시멤버들로 꾸려졌고 리더이자 오리지널 멤버 위르겐 프리츠는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전 앨범보다 판매량은 더 저조했다.
1990년대 초반, 히든팝 1 (Hidden Pop 1)이란 컴필레이션 음반이 킹레코드에서 발매됐는데, 말 그대로 숨겨진 팝 명곡들만 모아놓은 모음집이었다. 그런데 정말 대박 앨범 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보고 듣지도 못했던 숨겨진 팝 명곡들만 수록된 앨범이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이 다 좋아 정말 최고의 컴필레이션 음반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노래가 바로 트리움비라트의 <For You>라는 곡이었다.
기존 쥐새끼 쟈켓은 이미 소장하고 있었지만, 이 노래가 들어간 앨범은 도저히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이센스로 발매가 되지도 수입된 앨범도 없었는데, 때마침 시완레코드에서 이 앨범 발매 카탈로그가 나왔고 눈이 빠져라 기다렸었다.
단 한 곡 <For You>라는 곡 때문이었다. 정말 거의 천 번 이상은 들었을 것 같다. 좋아서 듣고, 추천해 주면서 듣고, 잘난 척 하려고 듣고, 술 마시면 듣고, 지금 생각하면 낯 부끄러울 정도로 애정 했던 앨범이다.
처음에는 <For You>때문이지만, 지금은 <Goodbye> 때문에 이 앨범을 만지작거린다. 당시로 봤을 때, <For You>도 절창이었지만, 듣고 또 듣다보니 <Goodbye>만 남았다. 프로그레시브 음반에서 이런 깔끔한 사운드와 가성은 그 어떤 앨범에서도 듣지 못했다. 멜로트론, 무그도 없던 난잡하지 않은 사운드 깔끔하다 못해, 멋진 베이스리듬과 어울어진 가성은 시간이 지나서도 식상하지 않다. 특히 베이스 라인은 너무 세련됐다. <For You> 때문에 구입했지만 <Goodbye> 이 곡을 놓치면 안 된다.
앨범쟈켓 자체가 독일식 건물을 차용했고, 밴드는 누가 봐도 독일밴드다. 그런데 앨범명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일품요리 [À La Carte]다. 노래는 영어로 부른다. 지금 봐도 아이러니하면서 절묘하다. 특히 <Goodbye>는 지금 들어도 세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