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수많은 방법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으면 되는 매체가 있다. 그게 바로 라디오다. 테이프, CD 넣고 뭘 들을지 골라야 하고, LP 판은 판 뒤집고, 컴퓨터는 마우스로 들을 노래를 이곡 저곡 선곡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선곡이 다 귀찮다 하면 라디오 튜너를 그냥 틀어놓는다.
3대의 튜너가 있다. 튜너는 라디오를 수신해 주는 기기이고 단독으로 라디오를 듣지 못한다. 앰프와 스피커가 꼭 있어야 한다. 튜너를 고를 때 제일 우선하는 건 음질인데, 음질의 관건은 역시 수신율이다. 막선 안테나를 달아줘도 시그널이 풀로 뜨는 튜너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저것 써본 결과 취향과 성향이 제일 잘 맞는 3대를 남겨놓았다.
라디오 튜너 레복스(ReVox) B760
레복스(ReVox)는 스투더(Studer)가 1951년에 만든 스위스 오디오 장비 회사다. 방송국에서 쓰는 프로장비는 스투더(Studer)이름을 달고 나오고 일반 가정용은 레복스(ReVox)로 판매하고 있다. 스투더가 디자인한 최초의 테이프 레코더는 다이나복스(Dynavox)라는 브랜드였는데 여기에서 아마추어 녹음기 브랜드 이름을 레복스(ReVox)로 쓰면서 이 이름이 지금껏 유지된 것이다. 주로 테이프레코더, 릴데크가 주력이었는데, 앰프에 튜너도 리시버같은 오디오 장비를 추가해서 발표한다. 1980년대 초에 B7xx시리즈의 고충실도 부품을 물량투입해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이때 발표된 모델이 바로 B760 튜너였다.
이전모델이 70년대 발표했던 A76모델이었고, 레복스(ReVox)의 장점은 중저역의 두툼한 음색이 특징이다. 튜너의 수신 감도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막선안테나 하나만 물려주면 거의 모든 주파수는 다 끌어온다고 보면 된다. 스테레오 분리도 매우 좋다. 그리고 백그라운드 잡음이 거의 없다. 두툼하고 특히 DJ 진행자의 목소리를 정말 잘 재생해주고 목소리에 특화된 느낌이고 재즈, 클래식 거의 모든 장르에 기본 이상의 음질을 들려준다.
이 튜너의 특징이라면 아날로그 튜너 전성시대에 발표돼 그 당시의 첨단기술들이 대거 채용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신디사이저방식의 튜너로 방송 주파수 채널이 메모리 된다는 점이었다. 단지 플래시 메모리가 없던 시대이기에 메모리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손가락건전지(AA배터리)를 넣어줘야 한다. 주파수는 15개까지 메모리 된다. 그리고 튜너 한가운데 튜닝 노브가 있는데 돌리면 손맛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튜닝할 수 있다.
다 좋은데 유일한 단점이 하나 있다. RCA단자와 단자 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케이블 연결이 아쉽다. 인터케이블 단자가 아주 작아야 딱 맞다. 약간 굵은 단자를 쓸 수 없다.
라디오 튜너 탠드버그(Tandberg) 3011A
탠드버그(Tandberg)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전자 제조업체였다. 라디오 분야로 출발해 릴테잎레코더, 카세트 데크, TV로 사업을 확장한 회사인데 1978년 급격한 경기 침체로 회사는 파산했다. 이곳저곳 팔려 다니다 현재는 탠드버그 데이타(Tandberg Data)로 사업이 분리되어 독일 회사에 팔렸고, 이 회사는 컴퓨터 테이프 스토리지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탠드버그 역사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라디오 제작 회사로 출발하는데 초기 생산라인은 라디오, 확성기, 마이크가 주요제품들이다. 1950년대 릴테이프 녹음기를 생산하면서 라디오와 릴데크가 주력 모델이 된다. 탠드버그는 합리적인 가격에 첨단 기술과 높은 품질로 명성을 얻었다. 주로 미국에서 인기가 상당히 좋았다. FBI나 수많은 공공 기관에서 탠드버그 릴테이프를 사용했다. 라디오는 노르웨이 산악 지형이 많은 관계로 무엇보다 수신율이 세계 최강이다. 정말 잘 잡히고 음질 또한 끝내준다. 마치 CD를 재생해 놓은것 같이 칼같은 음질과 수신율을 자랑한다.
인기모델은 최상위이자 제일 고가의 탠드버그 3001A라는 모델이 가장 인기도 높고 음질도 최강인데 똑같이 생긴 동생 모델이 존재한다. 바로 3011A라는 모델이다. 3001A의 1/3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3001A의 음질과 수신율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모델이다. 3001A에 비해 내부 부품이 조금 빠져 있다고 보면 된다. 가성비로 봤을 때 가장 아끼는 모델이고 검은색과 은색 두 가지 모델이 존재한다. 고급진 디자인과 알루미늄바디를 자랑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튜너인데 메모리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8개 채널까지 저장할 수 있다.
라디오 튜너 브라운(Braun) CEV-520
1921년 독일의 엔지니어인 막스 브라운이 설립한 기계 부품 회사로 1923년 라디오 안테나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는데 종합가전기기 회사로 요즘은 전기면도기, 전동칫솔, 헤어드라이기, 커피메이트에서부터 음향기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정용 가전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사실 브라운이 유명한건 바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이었다.
1950년대 독일 산업디자인의 거장 디터 람스가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디터람스는 1955년에 입사해 1997년 퇴사할 때까지 514개의 제품을 디자인했다. 브라운제품들의 디자인은 미니멀하고 정교하고 시대를 앞선 세련된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 바로 디터 람스였고, 애플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한다. 예전 브라운 제품들에서 애플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한다.
브라운 CEV-520 리시버를 가지고 있다. 1972년에 발표된 모델로 브라운 수석디자이너 디터람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실플하고 실용적이며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모델이고 중저역의 두툼한 소리가 특징이다. 수신율 나쁘지 않지만 레복스나 탠드버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음질적으로 약간은 아쉽다. 리시버앰프이기에 감안하고 들으면 편안하게 오래 들을 정도의 나쁘지는 않다. 스피커 매칭만 좋다면 퍼지는 저역과 아쉬운 고역이 상쇄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인측면으로 봤을 때는 역시 최강이다. 보는 재미가 있고 이것저것 돌려보고 만져보는 재미가 있는 리시버앰프다.
라디오 튜너 3대 비교 총평
브라운 리시버(독일), 탠드버그(노르웨이), 레복스(스위스) 3대다 유럽산 튜너들이고 음질과 사용 편의성, 디자인까지 만족스러운 제품들인데
음질은 탠드버그>레복스>브라운 순이다. 탠드버그로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는 CD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켰다. 레복스는 두툼한 중역과 오래 틀어 놓아도 질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고, 브라운은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보는 재미가 있는 튜너다. 공교롭게도 브라운과 텐드버그는 모니터 받침대로도 쓰이고 있다.
디자인측면에서는 브라운>탠드버그>레복스 순이다. 사용자 편의성은 레복스>탠드버그>브라운 순이다. 서로 대동소이할 정도의 차이만 존재한다.
공간에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선곡은 귀찮다고 하면, 라디오만 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