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부터 현재까지 50년이 넘는 활동 가수가 정규앨범이 9장이라면 믿겠는가? 이 9장 중에 2000년 이후 앨범이 6장이다. 심지어 1969년 RCA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첫 번째 앨범이 나온 시기는 10년 뒤인 1979년이었다. 두 번째 앨범이 1983년, 세 번째 앨범은 다시 거의 10년 걸려 1992년에 앨범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기다려준 음반사도 대박이지만 10년 동안 앨범준비와 녹음을 하고 또 하고 또 한 가수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프랑스 가수 로랑 불지(Laurent Voulzy) 이야기다.
로랑 불지(Laurent Voulzy)와 첫 만남
이름 자체도 무척 생소한데 첫 만남은 2007년 즈음에 이 생소한 가수의 팝송 앨범이 눈에 들어와 CD를 구매해 들었는데 완전 대박이었다. 정말 뽑기 잘해 얻어걸린 케이스로 산에서 산삼 캔 느낌이었다. 흔하디흔한 누구나 알만한 올드팝들을 리메이크해서 내놓은 일종의 커버앨범이었다. 그런데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너무 편하고 좋아하는 스타일로 편곡해서 들려줬다.
비틀즈(Beatles), 카펜터스(Capenters), 에블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 도어스(Doors), 길버트 오 설리번(Gilbert O’Sullivan), 샤데이(Sade)의 유명한 팝송들을 불렀는데 앨범 전체가 너무 좋았다. 심지어 이브 몽땅(Yves Montand), 샤를 트레네(Charles Trenet)의 샹송 고전들까지 리메이크해서 앨범에 실었다.
마치 컴필레이션 베스트 앨범을 만난 것처럼 그해 여름부터 몇 년 참 열심히 들었던 앨범이다. 이 앨범은 여름만 되면 꼭 한번은 듣게 되는 여름 노래 플레이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앨범이다.
도대체 로랑 불지(Laurent Voulzy) 이 양반은 누구지?
이 앨범으로 처음 접했지만, 프랑스에서는 나름 많이 알려진 인기 높은 싱어송라이터였다. 느린 앨범 제작 속도로 프랑스에서도 유명한데 앨범 당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꼼꼼해도 너무 꼼꼼한 완벽주의성향이라 마치 ‘나무늘보’ 같은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굉장히 높은 충성도를 지닌 팬들이 많은 편인데 초기 5장의 앨범에서 히트한 노래만 20곡이었다.
그런데 TV 출연도 안 하고 심지어 콘서트도 거의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둔해서 노래만 만들던 사람이었고 음악 하면서 만난 알랑 슈숑(Alain Souchon)과 평생의 음악동반자가 되는데 이 친구 덕분에 가끔 세상 밖에 나온 케이스다. 첫 번째 앨범 발표한 것이 1979년인데 콘서트는 1993년이 되어서야 생애 첫 콘서트를 열었다. 무대 울렁증? 노래를 못하나? 전혀 아니다. 성격이 정말 꼼꼼하고 신중해서 앨범만큼이나 라이브에 완벽을 추구한다나 뭐라나? 그나마 2000년 이후에 몇 라이브앨범도 발표하고 2019년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전역에 있는 교회를 돌며 콘서트를 열고 있다. 특이하게도 예배 장소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 정도면 딴거 필요 없고 음악 하나로 모든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다. 몇 달이 걸려도 노래가 마음에 들 때까지 스튜디오 밖을 나오지 않는단다. 실제로 자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 음반사와 계약이고 뭐고, 인기는 관심도 없고, 대중들이 아무리 앨범 내달라고 요구해도 다 필요 없다. 자기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의 노래가 나와야 그제야 앨범을 발표한다. 사실 이렇게 장인정신을 발휘해 앨범을 발표하니 사람들은 로랑 불지(Laurent Voulzy)의 노래에 열광하고 그의 앨범을 오랜 시간 얼마든지 기다려준다.
어린시절 로랑 불지(Laurent Voulzy)
10대 시절부터 유일한 관심사는 기타 코드를 완성하는 일일만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 스쿨밴드에서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이기도 했고 기타리스트가 되어 두루두루 악기를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의 첫 번째 노래는 1967년에 녹음한 “Timide”라는 노래였고 이 노래로 지역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레코드사와 첫 계약을 체결했다. 로랑 불지의 음악적 뿌리는 비틀즈(Beatles), 섀도우(Shadow)와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의 영국 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브라질음악에 대단한 관심이 높았다. 쌈바와 보사노바에 심취했고 결국 로랑 불지의 음악적 뿌리는 팝과 보사노바였다.
평생음악 동지 알랑 슈숑(Alain Souchon)
1974년에 RCA 예술감독이 로랑 불지에게 알랑 슈숑이란 가수를 한 명 소개해 준다. 자기보다 4살 많은 당시 신인가수 알랑 슈숑(Alain Souchon)을 만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로랑 불지는 이때 음악적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무엇보다 음악적 코드가 딱 맞아떨어졌고 이 둘의 관계는 현재도 지속되면 평생 음악적 동반자로 남아 있고 둘의 자식들도 친해져 아들들이 같이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할 정도다. 초기 둘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노래들은 큰 성공을 거둬들인다.
알랑 슈숑은 작사를 로랑 불지가 작곡한 히트곡들이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로랑 불지는 알랑 슈숑의 작곡가로서 수많은 새로운 히트곡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정작 RCA와 계약 후 몇 년이 지나도 앨범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RCA입장에서는 알랑 슈숑의 노래들이 히트 행진을 계속해서 신뢰는 가는데 정작 로랑 불지의 첫 번째 앨범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럼에도 간간이 45rpm 싱글들만 발표하는 독특한 음반 시장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나온 첫 번째 앨범
1979년 드디어 첫 번째 앨범이 출시된다. [Le Coeur Grenadine (석류시럽같은 마음)]이 발매된다. “Karin Redinger”,“Cocktail Chez Mademoiselle”,“Le Coeur Grenadine”이 차트 정상으로 직행했고 스매쉬히트를 기록한다.
감미롭고 달콤한 멜로디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들은 누가 들어도 빠져들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사실 10년동안 칼을 갈고 나온 노래들이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까? 어쩌면 앨범 성공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양반 대중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명성은 얻었지만 방송출연은 물론 각종 공연이나 콘서트는 아예 없었다. 우리나라 <어떤날>의 조동익과 많은 부분 닮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로랑 불지의 이런 칩거를 깨는 일이 있었는데 알랑 슈숑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해 노래한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4년동안 홈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작업해서 두 번째 앨범 [Bopper En Larmes(눈물의 바퍼)]를 발표한다. 역시 타이틀곡은 차트 정상을 찍으며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또 다시 10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앨범
두 번째 앨범 이후 세 번째 앨범이 나온 건 딱 10년 뒤인 1992년이다. 물론 이 사이에 자신의 카리브 군도에 위치한 과들루프에서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며 음악적 변화를 맞이한다. 아버지의 뿌리인 과들루프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된 카리브 제도에 위치해 있고 로랑 불지의 DNA에는 카리브해 과들루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의 음악적 토양도 로랑 불지의 앨범에 그대로 녹아 있는데 1985년에 싱글로 발표된 그의 최고의 히트곡 “Belle-Île-en-Mer, Marie-Galante”(바다의 아름다운 섬, 마리 갈랑뜨)가 이 시기에 발표된다.
이 노래는 1980년대 프랑스 최고의 노래로 뽑히기까지 했다. 3집 앨범에서는 거의 전곡이 사랑받고 차트에 안착하며 히트제조기로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드디어 생애 첫 번째 콘서트를 3주간에 파리에서 진행한다. 이것도 팬들의 계속되는 공연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은은하지만 지속적인 인기
로랑 불지(Laurent Voylzy)는 앨범보다는 싱글 발표위주로 그동안 활동을 했었다. 아마 이런 싱글 위주의 행보가 앨범이 거의 10년 주기 5년 주기로 발표됐던 이유였다. 3집 앨범의 성공과 대규모 콘서트를 계기로 앨범 형식을 선호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2000년 이후에는 그나마 꾸준히 앨범들이 발표됐다. 중간에 베스트앨범들과 라이브실황앨범들도 함께 발표하기에 이른다. 2001년에 네 번째 앨범 [Avril]을 발표하면서 또 한번 성공을 거둔다. 2003년에 [Saisons]제목으로 베스트 앨범까지 발표하면서 이전과는 빠른 행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커버앨범 [La Septième Vague]이 발매됐다. 휴가를 가는 길이나 해변에서 들을 수 있는 가벼운 앨범을 만드는 것이 컨셉이었는데 각종 미디어 홍보 덕분에 이 앨범은 프랑스 차트에서 오랜 기간 1위를 올랐다. 이런 성공 덕분에 우리나라 앨범이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2008년, 2011년에 6번째 7번째 앨범이 발표된다. 그리고 2014년에는 평생의 음악동반자 알랑 슈숑과 공동앨범까지 발표한다. 그리고 수도원과 교회같은 예배 장소에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교회 투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비틀즈, 지미헨드릭스, 바흐, 바덴 파웰, 죠르쥬 브라상스, 중세 음악과 스코트랜드 백파이프 영국팝 브라질 삼바음악까지 영향과 스타일은 고스란이 로랑 불지의 음악에 녹아 있다. 때로는 느린 걸음이지만 음악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소설 [좀머씨 이야기] 좀머아저씨 같은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로랑불지의 음악은 잘난 척 있는 척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악들만 오랜 시간 한땀 한땀 만들어 내는 장인처럼 곡 작업을 해서 내놓는다. 그만큼 언제나 믿음이 가는 음악인이다. 산들바람마냥 편안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음악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