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에게 대중적인 인지도의 기준은 당연히 히트곡이겠다. 뛰어난 가창력과 연주력으로 시대를 빛낸 명곡을 발표하며 시대를 담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소개할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는 굉장히 생소한 음악인이다.
국내에선 라이센스 CD 음반이 딱 한 장 발매된 것이 전부다. 이 라이센스 발매 또한 90년대 국내 음반시장의 황금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던 “All MY Trials” 가 수록된 [In A New Age] 앨범이었다.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와의 첫 만남
처음 그의 이름을 들은건 1994년 봄이었다. 당시는 이것저것 별별 것들을 다 들어보던 시기였는데 선배의 소개로 처음 그의 음반을 접했다. 첫인상은 포크와 컨트리음악으로 목가적인 느낌마저 풍기는 그저 그런저런 가수였다. 그 선배는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 앨범을 참 부지런하게도 모아서 신주단지 모시듯 했었다.
음악도 처음에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사골처럼 우려내면 우릴수록 맛이 나는 음악도 있다.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는 후자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이고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이상한 가수였다.
미키 뉴베리는 처음부터 가수는 아니었다. 쟈니 캐쉬(Johnny Cash), 케니 로저스(Kenny Rogers), 돈 깁슨(Don Gibson), 샘 쿡(Sam Cook),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노래들을 작곡했던 작곡자였다. 케니 로저스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하는데 케니 로저스 역시 미키 뉴베리의 곡을 여러곡 부르기도 했다.
서서히 히트곡도 생겨나고 두각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솔로 앨범들을 꾸준히 발표했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국내에서만 알려지지 않았지, 수많은 컨트리음악과 포크명곡들을 무수히 발표하며 80년대에 가장 어린 나이로 싱어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미키 뉴베리는 누구?
10대 시절 음악에 재능을 보였지만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것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19살에 공군에 입대 4년간 복무했고, 전역 후 송라이터로 직업을 삼는다. 네쉬빌에 유명한 레이블과 작곡계약을 맺으며 정식 프로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히트곡은 컨트리싱어 돈 깁슨(Don Gibson)의 “Funny Familiar Forgotten Feelings”인데 톰 존슨(Tom Jones)이 같은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부터다. 이즈음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가 발표한 “Sweet Memories”역시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경력을 쌓아가게 된다. 이런 작곡가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RCA와 단독 계약을 맺고 자신이 직접 노래까지 부르게 된다.
미키 뉴베리 음악의 트레이드마크는 이전에는 시도된 적이 별로 없었던 빗소리나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작은 자연의 소리 등을 녹음해 컨트리뮤직답게 노래 속에 효과음처럼 쓰면서 자연스러운 멋을 살렸던데 있었다.
예를 들면 노래 가삿말에 ‘Yesterday News Paper Forcast No Rain For Today, Yesterday News Was Old News~’라고 노래하면서 배경음으로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들어가는 이런 스타일이었다. 배경 효과음도 하나의 가사처럼 써내려 간 시적인 가사와 세련된 편곡이 돋보였던 싱어송라이터였다.
엘비스(Elvis)와 작곡가 명예의 전당 입성
미키 뉴베리의 “An American Trilogy”를 엘비스 프레슬리가 듣고 반해서 직접 레코딩하면서 명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다. 이 곡은 엘비스 공연 때마다 단골 레퍼토리에 포함됐고, 전세계 최초로 위성 중계된 엘비스 하와이 공연에서도 불렀던 곡이다.
이후 자신의 솔로 앨범들을 꾸준히 발표하는데 다른 컨트리곡과 포크음악, 블루글래스와는 다른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시적인 노래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앨범들을 속속 발표한다. 하지만 미국내에서도 많이 팔린 앨범들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업계에 있던 가수들의 존경과 동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미키 뉴베리의 곡을 리메이크하는 형태가 계속 이어졌다. 발표한 앨범들이 비평가들과 동료 가수들로부터는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청중들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이때까지 미국내에서도 10장이 넘는 레코딩을 남긴 가수지만 미키 뉴베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그를 제대로 평가한건 비평가들과 동료들이었는데 1980년 당시 마흔살 나이로 최연소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생전 1500곡 이상의 노래를 녹음했고, 수많은 동료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될 정도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기존 컨트리음악 작법을 따르지 않는 시적이며 세련된 작곡 스타일은 크리스 크리스퍼슨(Kris Kristofferson)을 포함해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미 작곡가의 작곡가로 불리며 여러 가수들의 멘토라는 명성도 함께 얻었다.
미키 뉴베리 LP음반들
틈날 때마다 앨범들을 수소문해서 모았고, 거의 다 모았는데 초기 앨범 몇 장이 이빨이 빠진 상태다. 후기앨범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떤 앨범이 최고라고 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목소리 하나로 다 먹어주는 싱어송라이터다.
포크블루스의 진수를 느낄만한 트랙들도 즐비하고, 편안하게 음반을 걸어 놓으면 물 흘러가듯 다 듣게 된다. 2002년 폐기종으로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메리칸 포크컨트리의 수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있지만 내 마음속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는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들어보시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