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을 챙겨봤다. 나이가 들어 남성호르몬이 빠져나가서인지, 그의 이야기에 시대의 아픔과 어둠이 묻어있어서인지, 그의 노래가 주는 감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시대를 살았던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진정 큰 어른이며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김민기라는 인물을 주변 인물들의 진솔한 인터뷰로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조명하고 있다. 누가 봐도 공들인 다큐멘터리라는 느낌부터 든다. 많은 사람을 만나서 조사를 했고,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가 퍼즐조각 맞춰지며 김민기의 거대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 중간 중간 김민기 노래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며 감정을 끌어올리는데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전혀 요란하지 않은 연출도 훌륭하다.
김민기를 처음 알았을 때
김민기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건 1988년 중1 때였다. 앞집에 살던 친구 누나가 노래를 하나 가르쳐 줬는데 “작은 연못”이란 곡이었다. 동요 같은 멜로디에 동화 같은 가사지만 갑자기 구슬퍼지는 이 노래를 그 누나는 좋아했었고 늘 흥얼거리며 다녔는데 하루는 이 노래를 직접 알려준 것이다. 세상에 뭔 이런 노래가 있나 싶었던 기억이 났다.
그 뒤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문학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 동아리의 오랜 전통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아침이슬”을 다 같이 부르며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아침이슬”은 그렇게 알게 됐다. 이 두 곡이 내가 아는 김민기 노래의 전부였다. 음악다방에서 DJ를 할 때도 레코드점에서 일을 할 때도 김민기 노래는 몇 곡만 아는 정도였다. 심지어 음악사에서 일할 때 <지하철 1호선> 앨범을 손님들이 가끔 찾았는데 그 당시 이 앨범은 뭐야? 아예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 앨범이 김민기가 만든 록 뮤지컬 음악인 건 나중에 알았다. 김민기 노래가 귀에 쏙 들어왔던 건 90년대 중반에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가을편지”를 들었을 때였다.
그 노래가 주는 분위기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김민기 음반을 사서 듣게 됐는데 이건 정말 보물을 찾은 것처럼 거의 모든 노래가 너무 좋았다. “친구”,“봉우리”,“아름다운 사람”,“상록수”,“백구” 이 노래들을 특히 좋아했다. 노래하던 선배에게 신청곡 1번은 늘 “친구”였다. 30대가 되면서 김민기 음악은 더 좋아졌고 40대에는 더더욱 좋아졌다. 시간이 익어가듯 그의 음악이 나에게도 익어갔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재정난으로 2024년 3월 폐관한 소극장 학전의 이야기는 이미 뉴스를 통해 접했다. 더불어 그의 투병 소식에 마음이 착잡했다. 70년대 발표한 노래로 겪었던 고초는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80년대에 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부였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확하게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그리고 90년대 자신의 음반 수익을 털어 학전을 세운 뒤로는 아티스트가 아닌 기획자로 살아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전의 폐관 소식과 함께 그의 투병 소식을 접하며 SBS가 발 빠르게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리라.
다큐를 보면서 김민기는 노래와 극으로 훌륭한 작품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연출가로 제작자로서 자신의 노래가 지향하는 가치를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예전에 손석희가 진행했던 <뉴스룸>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봤을 때 적지 않아 충격이었다. 김민기가 TV 방송 그것도 뉴스에서 인터뷰를 승낙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말수가 너무 적어서 인터뷰하기가 너무 어려웠겠다는 생각부터 들 정도였다. 천하의 손석희도 쩔쩔매는 모습에서 김민기의 입은 너무 무거웠다.
또한, 공식 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민기였고 극단 학전의 연출자로만 묵묵히 일 할뿐이었다. 언론사의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이나 공연 섭외도 모두 거절했다. 김민기가 겸손하고 부끄러움 많은 예술가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이번 다큐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학전을 운영하면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김민기가 빛나는 이유는 이 시대에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을 ‘뒷것’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뒷것’이라 칭했다. ‘앞것’인 배우들과 가수들 뒤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그들을 밝게 비추는 일을 했다. 배고픈 무명 배우들에게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자신의 월급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줬다. 심지어 그 시절에 계약서를 작성했고 4대 보험에 가입시켰고 투명한 회계시스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극단 학전 운영조차 매우 선진적이라는 것이다. 극단의 수입과 지출을 매우 투명하게 공개하고, 계약관계에 따라 수입을 분배하고, 지정식당에서 연극배우들 절대 배곯지 않게 먹이는 것도 김민기의 철학이었다.
1990년대 대학로에서 이런 모습은 그가 독보적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이상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걸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당시 척박한 환경에서 이게 가능하도록 자신의 철학을 꿋꿋이 관철한 것이 김민기였다. 하지만 경영상의 어려움과 투병으로 33년만에 학전은 폐관했다.
배울학(學)에 밭전(田)자를 쓰는 ‘학전’은 못자리를 뜻한다. 다큐에서 배우 이황의는 “김민기 선생님은 다 크면 내보내고 모를 새로 심고 농사짓는 마음으로 하셨다.”고 했다. 결국, 사람 농사를 한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잘되면 얼른 나가. 뒤돌아보지 마” 이 대목에서는 시네마천국에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큰 배우가 된 이들은 스스로 김민기를 스승님이자 아버지라 불렀다.
배우 중에는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장현성, 이정은, 배성우, 배해선, 김희원, 안내상, 김원해, 방은진, 나윤선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학전을 거쳐갔다.
학전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는 다큐에도 등장한 김광석, 강산에, 전인권, 윤도현, 장필순, 박학기가 있었고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어린 나이에 학전의 음악감독이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다큐에서 처음 접하는 이야기
이번에 김민기 다큐를 보며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70년대 김민기의 대학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래의 가사는 끊임없이 수정지시에 시달렸고 그 어떤 예술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70년대 말, 김민기는 군전역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인천의 피혁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다가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충격을 받고 만든 테이프 얘기가 나온다. 그 엄혹한 시절에 노래굿 <공장의 불빛> 테이프를 녹음하는 과정과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미처 몰랐던 얘기였다.
당연히 당시 비합법음반이었고 죽을 각오까지 하며 녹음을 했었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녹음을 송창식 연습실에서 했고 송창식은 녹음 작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자신의 작업실을 빌려줬고 직접 녹음까지 도왔다. 당연히 나중에 무서운 곳에 끌려가야 했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김민기는 그런 송창식을 대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송창식을 기인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말보다는 대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뮤지션이었다.
또, 광주에서 노동야학을 하다가 78년 겨울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전남대생 박기순의 영결식 현장에 김민기가 아무도 몰래 등장했었다는 사실이다. 영결식 마지막 순서로 추모곡 “상록수”를 불렀다는 점이다. 상록수는 원래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결혼식 축가였다고 하는데 영결식에서 불려진 그 가사는 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새삼 학전이라는 곳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곳인지? 왜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거기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했는지? 이 다큐를 통해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배우와 가수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점이 학전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전인권과 윤도현이 나와서 했던 인터뷰에서 “나는 학전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다”, “학전에서 공연하다니.. 아, 나는 성공했구나” 그리고 대중문화평론가 강헌의 인터뷰는 이미 여러차례 접하기는 했지만 새삼 들어도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땅 위에는 조용필, 땅밑에는 김민기” 이 둘의 자리를 주선한 강헌의 에피소드는 이 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말이 김민기의 입에서 나왔는데 “꿈은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느끼는 세상을 살아라” 이 다큐에서 이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도는 건 이 시대 많은 사람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김민기는 이 말처럼 살았고 이런 삶의 자세는 그의 노랫말에서 느낄 수 있고 새겨져 있다. 예술이 지향하는 세계와 자신의 삶을 일치시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곡들을 남겼던 거장임에도 소박하고 소탈하며 조용하게 살았던 김민기의 성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 <어른 김장하>를 봤을 때의 충격과 감동만큼이나 이 시대의 또 한 명의 진정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